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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검사, 처방 이후 복약 미루기
처방을 받고 몇일이 지났다. 한동안 가방안 작은 주머니 안에 지퍼까지 채워 잘 넣어둔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사실 40년 넘게 이렇게 살았는데 내가 지금 이 약을 먹는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약을 먹으면 내가 어떻게 달라질까에 대한 궁금증이 충돌했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조금 더 우세했는지 마냥 미루고 있었다.
11/21 난 큰 결심을 했다.
아침 10시쯤 잠이 깨지 않는 몽롱함이 나를 괴롭힐때 쯤 약하나를 꺼내 먹었다.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올랐고 모든 일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서 신체의 변화를 느껴보려 기다렸다. 사실 몽롱해 별다른 일을 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차분하게 신체활동을 멈추고 기다렸다.

" 시간이 느려진다. "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이다. 정확히는 눈이 잘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존에 내가 24프레임이었다면 약을 먹은 뒤엔 60프레임은 된 기분이다. 세상이 굉장히 또렷하고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전환된다. 툭툭 끊기고 뛰어넘어가 다시 되돌아오거나 못 본채로 넘어가던 나의 인생이 달라지는 기분이다. 벽에 붙은 포스터나 간판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들, 모니터 속 다양한 정보들도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머리 속에 밖힌다. 10~20대때 세상을 받아들이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 머릿속이 조용하다."
처음엔 느끼지 못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를 느끼다 문득 뭔가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라보고 있는 상황만 있었다. 내가 느낀 위화감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팡팡 떠오르며 나의 집중을 다른데로 옮겨버리던 머릿 속 생각들이 사라졌다. 아니 조용이 하고 있었다. 생각이 사라졌다기보단 오디오가 겹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다들 원래 이런환경에서 살았던건가? 다소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 졸리지 않아 " "낮잠은 필요없어"
나의 인생은 잠과의 싸움이었다. 매일 아침은 알람 폭격, 오후엔 낮잠과의 싸움이었다. 밥을 포기하고 낮잠을 선택한 날이 한둘이 아니었고 대학때는 수업과 수업사이에 열람실로 달려가 잔적도 많다. 수면만 확보되면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잔실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머리는 팽팽 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둘을 키우며 늦잠, 낮잠은 커녕 기본적인 저녁수면도 줄어들었다. 머리가 몽롱하고 안개낀 느낌이다.
단지 약 한알이었다. 브레인 포그가 날아간버렸다. 출근하자마자 부터 커피를 들이부어도 맑아지지 않던 머리가 맑아졌다. 잘보이고 조용하고 잠은 충분히 자고 일어난 상태 같았다. 완벽한 기분이다. 오랜만에 만성피로가 사라진 나를 만난 느낌이었다. 20대후반 30대초반의 활력있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에 얼떨떨했다.

#우선순위
회사 책상은 지저분 했다. 정리를 못한다기 보단 정리를 실행할 의지가 들지 않았다. 약을 먹고 가장처음한 일은 책상정리였다. 책상을 치우고 프로젝트별로 대충 쌓여있던 서류들을 폴더별로 정리해 라벨링해 정리했다. 진행해야하는 업무들도 우선순위별로 착착 진행했다. 평소보다 진행시간이 훨씬 단축된 느낌이고 생각보다 많은일을 끝냈다. 하다가 다른걸 하고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었다. 사실 거의 없었다. 다양한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하는 특성도 있지만 무리없이 하나씩 잘 마무리 했다. 점심시간은 그냥 책을 읽었다. 기가막히게 읽혔다. 읽다가 딴짓하거나 하는 일 없이 쭈욱 독서를 했다. 매번 읽은 부분 다시 되돌아가 다시읽고 하기를 반복하다 잠든 적도 많았다. 이런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왠만해선 잠이 올수 없는 장소에서 였다. 사람들이 많고 잠들기 쉽지 않은 카페, 지하철을 타고 자리가 없어 서 있을때와 같은 곳들이었다.
이렇게 독서를 하는 모습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생소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약복용후 12시간이 될때쯤 두통이 찾아왔다. 약기운이 빠져나가는지 누워있고 싶어졌다. 약기운이 떨어지기 전까지 아이와 미친듯이 놀아주었고 아이들이 잠들 때쯤 나도 누웠다. 누워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은 조금 뻑뻑했지만 잠이오지않았다. 내가 누웠는데 잠들지 않다니 수능 전날도 이러진 않았다. 군대 입대후 훈련병 첫날도 이러하진 않았다. 그러다 점점 두통과 눈의 뻑뻑함이 심해졌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11/22 아침) 눈이 안떠졌다. 눈곱이 엄청나게 꼈고 떡같은 눈곱을 닦아내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이 침침하다 세수를 간단하게 하고 거울을 보니 눈이 새빨갛다. 알레르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이건 다른문제라는 판단이 들었다. 난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잘 생긴다. 고양이를 키우는 동안 생겼다. 그때마다 눈은 충혈되고 팅팅부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했다. 안구건조증이나 결막염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ADHD 약 복용시 눈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안구건조증이 엄청 심해져 눈에 상처를 냈을 것이라고 했다.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충혈되고 부어있다. 오전 내내 눈이 침침했다 맑아졌다를 반복했고 눈 주변까지 붉고 부어있다. 어제 그 맑던 내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두배로 피곤하다. 머리가 멈춘 느낌은 아니다. 그냥 눈도 피곤하고 몸이 너무 피곤하다. 점심은 먹지않고 차에 누워 1시간을 내리 잤다. 그랬더니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든다.
"오늘은 약을 먹지못했다."
사실 어제의 만족감 때문에 오늘도 한번더 약을 복용해 볼까했으나 충혈된 눈으로 터져나오는 반작용때문에 약먹기가 주저된다.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복약은 하지 않았다 가만히 어제의 컨디션을 기억해내고있다. 그러다보니 나의 노력으로도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만 조금 올려주면 그 느낌이 돌아올 수도 있을것 같다. 약을 먹은 뒤 만큼 폭발적이진 않겠지만 말이다.
일단 다음 상담일에 교수님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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